2012년 01월 27일
아는 게 병
나라는 인간을 내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는 까닭이다. 난 어떤 상품을 사고 싶은 충동이 일 때마다 그 상품의 가격 대 성능 비와 사용기를 꼼꼼히 살피며 분석하고, 실제로 소유했을 때 그것을 얼마나 유용하게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예상하고, 이 모든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짜증과 스트레스, 추가 비용을 고려한다. 물론 이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면 소비 욕구는 싹 가셔 버린다.
예를 들어, 아이패드가 그렇다. 일견 매력적인 이 기기는 나에게 전혀 쓸모없다는 결론을 내렸다. 컴퓨터와 게임 콘솔을 제외한 플랫폼으로 거의 게임을 하지 않고, 풍부한 앱에 별 관심이 없으며, 집과 회사에서는 모든 일을 데스크톱으로 처리하고, 이동할 때는 피곤해서 무조건 잠을 자며, 집에 누워서는 차라리 TV 보는 게 더 편안하다. 이러한 마당에 거금 60만 원을 쓸 이유가 있을까? 더군다나 함께 액정 필름과 케이스, 키보드 등 액세서리도 사야 하고, 흠집 나지 않을까 떨어뜨리지 않을까 잃어버리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해야 하는 부담도 짊어지고 가야 한다.
이렇게 너무 이성적으로 따지다 보니 결국 주위에 쌓이는 게 하나도 없다. 비인간적이고 탈인간적으로 메말라 간다. 어떻게 생각하면 나에게 여자친구가 잘 생기지 않는 것도 지나치게 논리적인 '판단'에 의존하는 탓일지도 모른다. 몇 번 만나 보다가 그 사람의 말투와 표정, 정황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미리 결론을 내리기 일쑤다. 사실 연애라는 게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인데도 말이다.
약간 허술하더라도, 약간 찌질하더라도, 때로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저질러 버리는 모습도 필요할 듯하다. 내가 아는 나는 절대 이럴 분이 아니지만, 가끔은 자아를 무시하고 과감하게 내지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. 지금처럼 행동하다가는 합리적인 독거남으로 평생 깔끔하게 살 것 같으니까.
# by | 2012/01/27 23:22 | 잡담 | 트랙백 | 덧글(1)



